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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의 불사조 크라티아가 꿈꾸는 세상 [Phoenix Land]
3년 만의 새 앨범이다. 크라티아가 공식 네 번째에 해당하는 [Phoenix Land]를 들고 우리 앞에 다시 섰다. 옴니버스 앨범 [Friday Afternoon](1988)을 통해 첫 음반 데뷔, 그리고 이듬해 아발란시와의 스플릿 앨범 발매 이후 와해됐던 크라티아가 다시 이준일을 중심으로 재정비되며 [Friday Afternoon] 이후 25년 만에 정규앨범 [Retro Punch](2013)를 발매했을 때 이렇게 꾸준한 활동을 이어갈 거라 예단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을 것이다. ‘종합 선물세트’와 같은 반가움은 있었지만 상황에 밀려 정식 보컬리스트 없이 꾸려진 라인업이라는 인상 역시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라티아는 이러한 우려는 아랑곳하지 않고 2~3년 간격으로 정규앨범을 발표하며 묵묵히 자신만의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이번 앨범 [Phoenix Land]의 크레디트에서는 기존 멤버인 이준일(기타)와 오일정(드럼) 옆에 새롭게 영입된 베이시스트 황태정과 보컬리스트 김영준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지난 세 번째 앨범 [Clan Of The Rock](2017)까지 크라티아가 발표한 모든 정규앨범은 단 한 번도 같은 라인업으로 발매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물들은 일관된 노선에서 한 치의 벗어남이 없는 통일성을 유지한다. 바로 헤비메탈의 가장 화려한 시기와 흐름이었던 1980년대 헤어메탈의 재현이다. 이준일은 이에 대해서 크라티아는 1980년대의 느낌을 가장 잘 살리는 밴드 가운데 하나며, 이번 음반에 특별히 주안점을 둔 부분보다는 항상 하던 그대로를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육중한 그루브로 무장해 묵직한 오프닝을 장식하는 ‘Justice For All’은 홍콩의 민주화 운동이 모티브가 된 곡이다. 부분적으로 차용한 랩 메탈의 요소가 크라티아 특유의 미려한 멜로디라인과 조화를 이루며 무거운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주변의 힘든 상황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앞을 향하는 크라티아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Don't Look Back’의 시원스런 질주와 풍성한 코러스는 1980년대 헤비메탈 사운드의 완벽한 환생이다. 일상의 내용을 로큰롤 송가로 연결한 재미있는 가사를 가진 ‘We Gonna Rock’까지 정주행하면 국내 록 음악에 관심이 있는 마니아라도 그 이름이 생소한 보컬리스트 김영준의 이름을 다시 한번 찾아보게 될 것이다.
전임 보컬리스트인 김동찬에 비한다면 원석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김영준의 목소리는 매력적인 고음과 앞선 보컬리스트에 결코 뒤지지 않는 파워를 겸비했다. 지금까지 쌓아온 크라티아의 전통을 계승하며 앞으로의 활동에 젊고 신선한 피를 공급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밴드의 리더 이준일은 이번에 새로 들어온 보컬리스트 김영준과 베이시스트 황태정에 대해 “숨어있는 보석 같은 존재들이다.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기존의 크라티아와 합이 너무 자연스럽고, 넘치는 에너지는 최고다”라고 치켜세우며 새로운 멤버들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Don't Look Back’과는 반대편에서 일상이야기를 해학적으로 풀어낸 ‘날 때부터 꼰대는 아니었다’는 제목에서부터 호기심을 유발한다. 가벼운 듯 단순한 진행과 함께 한 번만 듣더라도 이내 따라 할 수 있을 만한 코러스는 공연장에서 관객의 흥겨운 동참을 유도하기에도 충분해 보인다.
크라티아 음악의 장점은 이준일의 기교와 파워를 겸비한 기타 테크닉과 함께 빼어난 멜로디라인과 유려한 코러스를 들 수 있다. 이는 강성의 곡에서건 소위 이야기하는 록발라드 넘버에서건 동일하게 적용된다. 피아노에 나운조와 서사적인 코러스를 늘어놓는 팝페라 팀 빅맨 싱어즈의 김제선과 박동일이 참여한 토치 송 ‘어둠의 끝에서’나 어쿠스틱 발라드 ‘영웅의 꿈’, 또 모비딕의 키보디스트 김선빈이 오르간 피처링을 담당해 고풍스런 느낌을 자아내는 블루지한 트랙 ‘그대 내 사랑’은 방송을 통한 에어플레이로 팬 베이스를 넓힐 수 있는 소지 가득하다. 어쿠스틱 기타의 스트로크와 메이저 스케일의 진행이 음반의 전반적인 분위기에서 동떨어져 상큼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인어왕자’는 음반이 발매되는 여름에 듣기에 적합한 이색작이다.
2020년은 지금까지 ‘코로나19’가 모든 것을 삼켜버린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크라티아의 신보 작업 역시 시기상으로 멤버들의 건강이나 녹음 스케줄 관리 등 코로나19의 여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극단적 상황은 밴드에게 또 다른 창작의 동기를 제공했다. ‘Doomsday’는 코로나19 팬데믹을 소재로 한 곡이다. 위대한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의 이기심을 버리라 외치는 이 곡에서 역시 앞서 언급한 새로운 보컬리스트 김영준의 매력은 차고 넘친다. 그에 비해 예전 최양락과 팽현숙 커플이 출연했던 코미디 프로그램 가운데 ‘도시의 사냥꾼’이 창작의 모티브가 된 ‘Love Machine’은 곡의 진행 뿐 아니라 가사 내용까지도 해외 헤어메탈을 그대로 빼다 박은 트랙.
이번 음반의 타이틀은 [Phoenix Land]다. 불사조는 말 그대로 역경을 거치며 지금 이 자리에 있는 크라티아를, 불사조의 땅은 그러한 크라티아가 꿈꾸는 세상이 될 것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가만히 있으면 왠지 나 혼자만 뒤처지는 게 아닌지 위축될 때가 있다. 하지만 모두가 빠른 변화를 따를 필요는 없다. 때론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게 필요할 때가 있고, 그러한 우직함 역시도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우린 이미 여러 차례 목격해 왔다. 우리에게 크라티아는 바로 그런 존재가 아닐까. 국내 메탈 음악의 시작점에서 해외 밴드들만 가능했으리라 믿었던 비주얼과 사운드를 누구보다도 빨리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보여줬지만, 함께 출발선에 서 있던 많은 동료들의 이탈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봐야만 했던 시간들. 하지만 크라티아는 그 자리에 남았고 그 시작과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우리 곁에 서 있다.
코로나19로 위축될 수밖에 없지만 크라티아는 음반 발매와 함께 상황이 호전되는 대로 ‘록의 종족’ 혹은 ‘록의 자손’으로서의 끈기와 신념을 대변하는 순회공연 ‘Clan Of The Rock’을 다시 계획하고 있다. “코로나가 공연계를 힘들게 하는 건 사실이지만,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굳은 신념을 행동으로 이어나가겠다는 이야기다. “록은 죽었다”며 섣불리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러한 신념들이 있기에 록은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아 불사조로서 영원히 그 생명을 이어갈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
[CREDITS]
Excutive Producer 이준일
Producer 김형택 (스튜디오 플로우)
크라티아
Vocals - 김영준
Guitars – 이준일
Bass – 황태정
Drums – 오일정
Track 5. 어둠의 끝에서
Chorus 김제선, 박동일
Piano 나운조
Track 10. 그대 내 사랑
Organ 김선빈
All songs recorded,,Mixed by 스튜디오 플로우
Mastered by 소닉코리아
PRODUCTION
Artworks by 우정훈
Album Photo by 스튜디오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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